사이버펑크 2077 v1.31 후기
1. 버그: 그래도 이제 할 만은 하네.
첫 출시 버전 영상을 보니까 3인칭에서 주인공이 대머리로 나오질 않나 거울에 주인공(이하 "V")이 비쳐야 할 것이 시커멓게 나와버리지 않나 중요 장면에서 화면이 출력 안되질 않나 난리던데, 최소한 그렇게 심각하게 플레이를 방해하는 버그는 많이 잡혔습니다. 하지만 저도 게임 하면서 크래시를 무려 4번 경험했고 심지어 한 번은 게임 시작 직후, 문자 그대로 첫 선택지에서였습니다. 세이브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F5는 퀵세이브 단축키입니다. 치명적인 버그는 그래도 많이 잡혔지만 산통 깨는 버그들은 여전합니다. 특히 똑같은 모습의 군중이 계속 나오는 건 참 짜증나더군요. 한 번은 가게에 들어갔더니 가게에 있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모델링/텍스처여서 실소가 나왔습니다. 그 외 컷신에서 총이 제대로 손에 들리지 않아 멋드러져야 할 신이 마술쇼가 되기도 하고 열받아서 사람을 때리는데 제 위치에 사람이 쓰러지지 않아 빈 허공을 때리기도 하고요. 간단히 말해서, 출시 후부터 1.31까지는 플레이를 못할 정도의 버그를 잡는 중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반대로 게임에 치명적이지 않은 버그는 여전하고요.
2. 그래픽, 사운드, 분위기: 장르 팬이면 무조건 100점
묶어서 말하는 이유는 이들은 그냥 10점 만점이거든요. 사이버펑크 장르물을 좋아하는데 이 게임의 그래픽, 사운드, 분위기가 마음에 안든다면 본인이 사이버펑크가 아니라 디젤펑크나 다른 장르랑 착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아 물론 그래픽은 디테일 같은 걸 말하는 건 아닙니다. 전반적인 그래픽 컨셉과 음악, 모든 게 합쳐져서 풍기는 2077년의 암울한 디스토피아가 진짜 눈 앞에 펼쳐진다는 거죠. 특히 스토리 따라가다 진지한 대화를 할 때 준비된 풍경은 아... 스포만 아니면 보여드리고 싶을 정도네요. 제가 게임에서 가장 사랑하고 감탄한 씬은 바로 버려진 유전에서 나오는 장면입니다. 해보신 분들은 뭔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여기 올린 스크린샷들은 전부 다 프리 렌더링 컨신이 아니라 그냥 일반 스크린샷 입니다. 애초에 프리 렌더링 컷신이 없기도 하고 말이죠.
3. 전투: 퀵핵 개사기
난이도에 대해 불만이 좀 많던데 왜 그런지 알았습니다. 저는 퀵핵 특화라는 일종의 스킬 쓰는 마법사 쪽으로 했는데 중반만 넘어가도 너무 사기가 되더라고요.(왜 사기인지 4번을 보시면 됩니다) 만렙이 50인데 25~30만 되어도 보통 난이도에서는 메인 퀘스트 엔딩까지 보는 데는 지장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지루해서 중반 부터는 스킬 대신 총질에 집중하긴 했는데 뭐 암튼 그렇습니다. 요즘 나오는 오프월드 RPG 답게 전투 스타일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맨손, 둔기, 일뽕 넘치는 카타나, 권총, 머신 건, 샷건까지. 수류탄도 있고요. 다만 반대로 카타나 빼면 딱히 다른 게임과 크게 다른 점을 모르겠습니다. 퀵핵이란 것도 사실 그냥 마법 스킬 같은 거고... 다른 점이라면 보안 카메라 해킹으로 원거리를 넘어 아에 전투 지역 밖에서도 전투를 진행할 수 있단 것 정도? 여타의 마법사 클래스처럼 초반에는 좀 버겁고 어려울 수 있는데 이후에는 장비 하나 장만될 때마다 급격하게 쉬워집니다.
4. 전투-잠입: 이게... 잠입?
애초에 저는 컨셉을 잠입/해커 형태로 잡아서 잠입 플레이를 많이 했는데 나름 재밌었습니다. 메인 퀘스트조차 전투가 어려우면 잠입해서 조용히 처리하는 게 기본이고 전투는 옵션으로 나올 때가 많습니다. 주인공이 용병이 직업이라 받는 의뢰 중에서도 전투없이 깨달라라는 게 있고요. 더군더나 퀘스트 깨는 데에 개발진이 많은 루트를 준비해뒀습니다. 힘캐라면 문을 강제로 뜯어서 침투하는 루트, 공돌이캐라면 전압기를 무력화해서 풀어내는 루트, 이중 점프가 가능한 장비 착용 중이라면 역시 그걸 이용한 루트 등 정말 다양한 루트가 있어서 작정하고 잠입 플레이 해봐야지, 라고 한다면 루트 찾는 거 자체가 흥미로울 거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런 루트가 필수가 아니라 귀찮게 돌아가거나 처리해야 할 적이 늘어나냐 vs 깔끔하고 빠른 루트 정도 차이이기도 하고요.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 적들의 경계 상태가 기본 -> 경계 -> 전투로 되어 있는데 이게 괴리가 너무 심하네요. 퀵핵,으로 적을 처리하면 눈 앞에 시체/기절한 동료가 있어도 경계에서 안벗어나고 이 경우 "전투 없이 깬다"라는 옵션이 성공적으로 처리됩니다. 적들이 "넷러너(게임 내 해커를 일컫는 말)다! 조심해! 어딨냐!" 이러면서 픽픽 죽어 나가는데 여전히 전투 없이 깨는 걸로 된다는 거죠. 즉, 아무도 안죽이고 안들키고 몰래 들어갔다 나가는 게 잠입이 아니라 마법 스킬로 죄다 죽이는 것도 잠입으로 처리된다는 겁니다=_= 그러다 보니 초반에 스킬이 부족할 때는 살금살금 조심스레 잠입으로 처리해서 나름 스릴 있었는데 후반에는 그냥 스킬 난사로 죄다 처리하고 유유히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5. 밸런스: 이건 너무 쉬운데...
4번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퀵핵이라는 스킬 중 전염이 너무 사기입니다. 한 번 스킬을 쓰면 일종의 독뎀을 주는데 이게 기본적으로 근처의 가까운 적에게 퍼져나갑니다. 그러다보니 경계에 잡히지도 않을 원거리에서 보이는 적에게 계속 전염만 쓰면 그냥 다 처리된느 거죠. 상술했듯이, 이렇게 경계로 끝나면 들키지 않은 걸로 처리되기에 전염으로 모조리 학살해도 별 이상없습니다(사실 스토리 상 몰래 침투한다 해도 닥돌해도 별 상관없습니다 ㅋㅋ 의뢰에서 선택 사항으로 전투 없이 해달라 할 경우에도 추가 보상이 없을 뿐 별 상관없구요) 물론 그렇게 되려면 스킬 트리와 장비를 어느정도 갖춰져야 하지만 일단 갖춰지면 다른 장비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가 되버리는 게 문제더라고요. 패치 전에는 더 말도 안되었던 게, 적의 위치를 드러내는 핑이란 스킬이 있는데 이 핑의 최종 업그레이드판은 벽 너머에서도 각종 퀵핵 스킬을 쓰는 게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공략에서 필수라고 하던데, 직접 해보니 안되어서 찾아보니 결국 패치로 막혔다고 하더라고요.(지금은 무조건 시야에 있어야 합니다. 카메라로 보는 시야라도) 살짝 억울했지만(?) 가뜩이나 퀵핵이 사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잘 막혔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 보니까 카타나가 사기였던 밸런스도 조정되었다고 패치마다 밸런스를 조정하는 것은 같더라고요. 아, 참고로 이렇게 원거리에서 해킹만 써서 쉽게 처리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해킹을 쓰면 위치가 노출되게 되어 있습니다. 근데 뭐하나요... 그런다고 전투 단계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여전히 경계 상태인지라 자리 피하면서 계속 전염 쓰면 그만인 걸...
* 어쩌면 레벨 스케일링이 없는 게 원인일 수 있습니다. 저는 계속 보통으로만 했거든요. 따라서 게임이 쉬워지면 난이도를 직접 올리시면 그래도 좀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근데 많은 분들이 그래도 쉽다고 하시더라고요...쩝...
6. 스토리, 연출: 할.말.않.하.
루머 중에, 2018년 데모 이후 키아누 리브스를 게임에 집어 넣으면서 스토리가 대대적으로 바뀌고 그 때문에 시간이 촉박해져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습니다. 상당히 그럴싸하게 들리는데, 막상 플레이해보면 루머는 역시 그냥 루머지싶을 정도로 스토리와 연출이 대단합니다. 특히 뛰어난 미술과 음향이 어우러져서 진짜 무슨 영화 보는 느낌이더라고요. 축축하고 어두운 미래의 디스토피아 도시나 사막의 황무지를 풍경으로 그려지는 영상미가 엄청나죠. 엔딩은... 음... 각자의 취향에 맡기겠습니다. 저는 극혐이면서 극호인 이상한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ㅋㅋ 다만 여느 게임이 그렇듯 세세하게 따지면 스토리가 촘촘하다고는 못하겠습니다. 곰곰히 따지면 좀 뭔가 엉성한 점이 있더라고요. 다만 게임 전체 스토리를 즐기는데, 주제 의식을 무너뜨릴 만큼 치명적이진 않다 생각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건, 위처3처럼 연애 대상이 스토리와 관련이 깊은 편인데, 각각 남/여별 이성애/동성애 이렇게 4명이 준비되어 있는데 남녀차별(?)이 좀 심했습니다. 두 여성 캐릭터는 아에 메인스토리와 직접 맞물리고 개인적인 매력도 넘치는데 두 남성 캐릭터는... 한 캐릭터는 아에 V의 스토리와 동떨어져 있고, 다른 캐릭터는 연관은 있는데 맞물린 게 아니라 그냥 파생된 느낌이라 둘 다 소위 깍두기란 느낌이 듭니다. 더군더나 두 여성 캐릭터는 메인 퀘만 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두 남성 캐릭터는 다른 사이드 퀘스트를 해야 다시 그 캐릭터와 연관된 사이드 퀘스트가 풀리는 식이라 붕 뜬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일부러 이랬을 거 같지는 않고 이 것도 시간이 촉박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원래 두 남성 캐릭터도 메인 스토리에서 만나야 하는데 미완성 컨텐츠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둘이 메인에서 빠지고 그만큼 메인 퀘스트를 줄인 거죠. 뭐 다 추측의 영역입니다만.(여성 캐릭터 한 명은 아에 1막에서 만나고, 2막은 총 3개의 퀘스트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하나에서 다른 여성 캐릭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남은 2개에서도 각각 남성 캐릭터를 만나게 된다면 숫자가 딱 떨어져 맞는 거죠. 더욱 더 일정 상 빠진 게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이랄까요.)
아, 혹시 오픈월드 RPG 하실 댸 메인퀘스트 빨리 다 밀어서 엔딩보고 2회차에서 사이드퀘스트 하시는 분이 있다면 사이버펑크 2077은 그렇게 즐기면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엔딩을 보는 데 3 루트 + 숨겨진 1루트가 있고 조금 변하긴 하지만 크게 보면 총 5가지 엔딩이 있는데 메인퀘스트만 밀고 바로 엔딩 볼 준비를 하면 한 루트 밖에 선택할 수 없고,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게까지 희망적이지 않는 엔딩이 나오는데 대신 그래도 이 루트에서만 볼 수 있는 캐릭터의 속사정 같은 것도 있어서 나름의 묘미가 있고, 한편으론 아... V가 이렇게 행동하면 이런 결과 밖에 나오지 않구나... 하면서 2회차 때는 변화를 시도할 수 있으니까요. 엔딩을 본 후에 크레딧과 함께 캐릭터들이 V에게 안부 메시지를 남기는 컨셉으로 에필로그가 나오는데 관련 퀘스트를 어떻게 끝냈냐에 따라 메시지가 바뀌기도 합니다.
7. 마무리
할 만 합니다. 1년이 지나서 이제 겨우 할 만 하다의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개발진들이 원래 2022년에나 출시할 수 있을 거다라고 했다던데 과연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금 더 기다릴 수 있는 분들은, 차세대 게임기 재런칭과 대규모 1.5 패치가 2월 말이나 3월 초에 있을 것이란 루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패치들이 아주 약간의 편의성 추가 + 심각한 버그 처리에만 집중했다면 1.5는 편의 기능도 대폭 추가할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루머긴 하지만 차세대 게임기 런칭을 게임 자체의 재런칭으로 삼겠다는 건 뭐 당연한 전략이고 겸사겸사 다른 플랫폼의 판매량도 증진하려면 게임 자체도 제대로 패치하는 게 낫기 때문에 패치 내용은 달라질 지언정 차세대 게임기 런칭과 1.5패치가 큰 규모일 꺼란 점(설령 여전히 버그 패치더라도)은 루머가 아니라 사실로 봐도 될 듯 합니다. 현재 DLC가 준비 중이라던데 재런칭 성과에 따라 DLC를 그대로 출시할 지 아니면 결국 포기하고 위처 신작에나 집중할지 결정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뭐, 첫 DLC는 확정이고 다음 DLC는 첫 DLC 성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라는 말도 있긴 합니다만, 재런칭마저 실패한다면 첫 DLC 출시도 불투명해지겠죠. 저는 엔딩에서 멘탈 털려서 지금은 2회차 못하겠고 1.5 패치 나오면 재도전 해보려 합니다.
8. 덤
6번에서 말했지만, 혹시 키아누 리브스 때문에 일정이 어그러진 거 아닌가 하는 뇌피셜 루머가 있는데 전 그보다 게임 방향성이 뒤엎어진 걸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2018년 공개된 데모를 보면 이 시점에서 원래 의도했던 건 TRPG 원작을 오픈월드 RPG로 구현하는 거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TRPG에서도 나름의 스토리가 있긴 하지만 그보다 말 그대로 역할 수행에 집중하게 되는데, 원래 사이버펑크 2077은 그 원작대로 이 거대한 도시에서 V라는 용병으로서의 역할을 해내가는 게 그 자체가 본래 내용이었을꺼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해놓고 보니까 게임 시스템은 그럭저럭 완성했는데 TRPG 스타일에 집중하다 보니 스토리가 너무 뻔하고 임팩트가 부족해서 게임 시스템을 마무리할 인원까지 빼서 스토리를 대대적으로 수정한 버전이 지금의 사이버펑크 2077은 아닐까 싶은 거죠. 뭐가 어찌되엇건, 본래 개발자들의 주장대로 2022년에 좀 더 가다듬어 출시했다면 평가가 어땠을지 참 아쉽습니다.